인류가 지구를 바라보는 시각을 바꾼 우주비행사들의 경험처럼, 바닷속 깊은 곳에서 활동하는 해양 탐험가들도 자연과 생명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얻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구 밖에서 바라본 푸른 행성이 인간과 자연의 연결성을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됐다면, 심해 환경은 특정 해양 생태계와의 유대감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우주에서 느끼는 ‘조망 효과’, 바다에서는 ‘언더뷰 효과’
우주비행사들이 지구를 바라보며 겪는 강렬한 심리적 변화는 ‘조망 효과(Overview Effect)’로 알려져 있다. 이는 광활한 우주 속에서 푸르게 빛나는 지구를 바라보며 인류 공동체와 지구의 소중함을 깨닫는 현상이다.
이 개념은 미국의 우주 작가 프랭크 화이트가 저서 ‘조망 효과: 우주 탐험과 인간의 진화’를 통해 처음 소개했다. 이후 여러 우주비행사들이 지구를 직접 바라본 경험을 통해 비슷한 감정을 증언해왔다.
달 왕복 임무를 수행한 우주비행사 크리스티나 코흐는 지구 귀환 직후 “이 지구에 살고 있는 우리는 언제나 함께하는 하나의 팀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며 “달 가까이에서 바라본 지구는 우주에 조용히 떠 있는 구명정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러한 초월적 경험은 우주에서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미국 노스이스턴대학교 연구진은 해양 탐험가들이 심해에서도 비슷한 수준의 경외감과 연결감을 경험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이를 우주비행사의 조망 효과에 빗대 ‘언더뷰 효과(Underview Effect)’라고 명명했다.
장시간 머무는 수중 탐험가, 바다와 새로운 관계 형성
연구 대상은 수중 연구 기지에서 임무를 수행한 14명의 해양 탐험가였다. 이들은 ‘아쿠아너트(Aquanaut)’라고 불리며, 수중 시설을 거점으로 생활하면서 바닷속에서 연구 활동을 진행한다.
일반적인 잠수와 달리 수중 연구 기지는 내부와 외부 압력이 동일하게 유지된다. 이에 따라 탐험가들은 감압 과정 없이 하루 8시간 이상 해저에서 활동할 수 있다.
연구를 이끈 심리학 박사 연구원 크리스틴 킬갈렌은 “일반적인 스쿠버다이버는 약 18m 깊이에서 45분 정도 머문 뒤 수면으로 올라와야 하기 때문에 해양 생물을 충분히 관찰하기 어렵다”며 “아쿠아너트는 제한 없이 해저 환경에서 활동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수중 생활을 마치고 지상으로 복귀할 때는 약 24시간의 감압 과정이 필요하다.
지구 전체보다 특정 해양 환경과 강한 연결감 느껴
노스이스턴대학교 해양생물학자 마크 패터슨 교수의 경험은 언더뷰 효과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패터슨 교수는 1980년대 카리브해 해저 연구 기지 하이드롤랩에서 일주일간 수중 임무를 수행했다. 그는 낮에는 해양 생태계를 탐사했지만, 밤의 바닷속 모습을 직접 보고 싶어 해치를 열고 어둠 속 바다로 나갔다.
90m 길이의 산소 공급선을 의지한 채 검은 모래 바닥에 앉은 그는 생물 발광 플랑크톤이 별처럼 반짝이는 모습을 목격했다. 동시에 보석처럼 빛나는 수중 기지를 바라보며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멋진 일은 수중에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총 89일을 수중에서 보냈다.
연구에 참여한 해양 탐험가들은 수중 생활이 자연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환경과의 연결감을 강화했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70%는 경외감과 감사함이 증가했다고 밝혔고, 64%는 주변 환경에 대한 몰입감이 커졌다고 답했다.
킬갈렌 연구원은 “해양 탐험가들도 우주 탐험가들과 마찬가지로 모든 것이 연결돼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다만 지구 전체보다는 특정 해양 환경과의 연결성이 더 강하게 나타났다”고 말했다.
해양 생태계 보호 인식 높이는 새로운 경험
연구진은 짧은 시간 동안 물속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느낄 수 있지만, 아쿠아너트처럼 장기간 머무를 경우 경험의 깊이가 훨씬 커진다고 설명했다.
며칠에서 수주 동안 매일 수시간씩 해저에서 생활하면 생태계에 대한 관점 자체가 변화한다는 것이다. 해양 생물의 생활 방식을 가까이에서 관찰하면서 이들을 단순한 관찰 대상이 아닌 ‘이웃’처럼 인식하게 되고, 수면 위 폭풍이 발생할 때 전달되는 물리적 변화를 직접 느끼며 지구 환경과 더욱 가까워진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2014년 수중 연구 기지에서 30일간 생활한 해양과학자 파비앙 쿠스토는 “매일 몇 시간씩 마주하는 인간에게 해양 동물이 적응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매우 놀랍다”며 “짧은 잠수에서는 볼 수 없는 먹이 활동과 포식 행동을 관찰할 수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 해양 탐험가 자크 쿠스토의 손자인 그는 “작은 수중 도시에서 펼쳐지는 생명의 움직임을 직접 목격하면 지구의 건강과 아름다움이 곧 우리의 건강과 아름다움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고 강조했다.
약 100명 남은 아쿠아너트…새로운 해저 시대 준비
하지만 수중 생활이 항상 긍정적인 경험만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연구진은 아쿠아너트들이 질소 마취로 인해 감각 저하, 어지럼증, 극심한 피로, 생체 리듬 장애 등을 겪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많은 탐험가들은 이러한 어려움을 감수할 가치가 있는 연구라고 평가했다.
최초의 수중 연구 기지는 해양 탐험가 자크 쿠스토가 건설했다. 이후 여러 형태의 수중 시설이 개발됐으며, 현재 장기간 포화 잠수를 이용한 연구가 가능한 대표적인 시설은 미국 플로리다 국제대학교가 운영하는 아쿠아리우스다.
아쿠아리우스는 최대 4명의 과학자와 2명의 기술자가 머물 수 있으며, 평균 임무 기간은 약 10일이다. 연구팀은 현재 생존해 있는 아쿠아너트가 약 100명 정도라고 밝혔다.
‘바다의 국제우주정거장’ 건설 가능성 주목
최근에는 더욱 발전된 형태의 해저 연구 기지 구축 계획도 추진되고 있다. 영국 해양 탐사 기업 DEEP는 해저 기지 ‘뱅가드’를 개발하고 있으며, 향후 더 큰 규모의 모듈형 시설 ‘센티널’도 계획하고 있다.
뱅가드는 해저 17m 깊이에 설치될 예정이며, 외부에서 공기와 물을 공급받고 인터넷 연결 기능도 갖출 예정이다. 최대 4명이 최소 7일간 머물며 연구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또한 파비앙 쿠스토는 12명이 생활할 수 있는 대형 해양 연구 기지 ‘프로테우스’를 추진하고 있다. 이 시설은 실험실, 숙소, 의료 공간 등을 모듈 형태로 확장하고 잠수정과 연결할 수 있도록 설계돼 ‘바다의 국제우주정거장’ 역할을 목표로 한다.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가 환경 보호에 대한 인식을 바꾼 것처럼, 심해에서 경험하는 새로운 시각 역시 해양 생태계 보전과 자연에 대한 인간의 관계를 변화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